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아프리카 관계 (문단 편집) == 전근대 == 과거 중국산 도자기같은 물품들은 인도양 교역망을 통해서 아랍인, 페르시아인, 포르투갈인 상인들을 통해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까지 퍼졌다. 짐바브웨 유적지에서 중국산 도자기가 발견되면서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직접교류는 물론 부재했고 중세 중국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 역시 아랍인/페르시아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정보였다. > 불름국(동로마 제국)에서 서남쪽으로 [[사하라 사막|사막]]을 건너 2천 리 가면 마린(磨鄰)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노발살(老勃薩)이라고도 한다. 그 사람들은 검은 색이고 성질이 사납다. 그 지방에는 전염병이 많고 초목과 오곡이 없으며, 말린 물고기로 말을 사육하고 사람들은 대추야자 등을 먹는다. 위 아래로 문란한 행위를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음이 오랑캐들 가운데 가장 심하다. 그 군신은 7일에 하루 쉬며, (그런 날은) 명령의 집행이나 교역의 사무도 하지 않고 마시면서 밤을 지샌다.[[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17_0221_1200#self|번역출처]][* 지금의 서아프리카 또는 중앙아프리카의 사헬 지대로 추정된다.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중국-모리타니 관계]]에 이 기록을 언급하고 있다.] >---- > 바다 가운데에 발발력(撥拔力)[* 여기서는 [[마그레브]] 지방의 그 [[베르베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프리카의 [[나일사하라어족]] 유목민을 지칭한다. [[이븐 바투타]] 역시 소말리아 해안의 유목민 등 현지인들을 베르베르라고 불렀다.] 종족이 있는데 어디에도 복속하지 않는다. 오곡이 나지 않아 고기를 먹으며 [[나일사하라어족#s-2|소를 찔러 그 피를 젖과 함께 마신다.]] 풍속은 의복을 입지 않고 양가죽으로 자기를 가린다. 부인은 하얗게 밝고 아름답다. 상아와 아말향(阿末香)이 많아서 페르시아의 상인들이 가서 교역을 하려고 하는데, 반드시 수천명이 고운 포[㲲]를 바치고 피로 서약서를 써야지 교역을 할 수 있다. 무기로는 예리한 것들이 많고 또한 활·화살·갑옷·창이 있다. 병사는 20만에 이르는데 여러 차례 [[대식국]]의 침략을 받았다.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17_0221_1230|번역출처]] >---- > [[신당서]] > [[북송]] 태종이 그 나라에 대해 물으니 사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대진국(大秦國)[* [[로마 제국-중국 관계|대진국을 로마 제국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송사]]에서 [[동로마 제국]]은 불름국(拂菻國)이라고 나오기 때문에[[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20_0490_0090_0020|#]] 다른 나라로 해석 가능하다.]과 인접해 있는데 그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관할하고 있는 인구는 겨우 수천에 지나지 않으며 도성은 산과 바다 사이에 있습니다."[* 킬리만자로 산과 바다 사이에는 아랍인, 페르시아인들이 세운 [[스와힐리]] 무역도시들이 여러 곳 존재하였다. 인구 수천이라 말하는 것으로 보아 사절은 이러한 스와힐리 도시국가 출신 부유한 대상인으로 추정 가능하다. 여담으로 킬리만자로 산은 조선 초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도 나온다.] 또한 그 지역의 산물에 대해 물으니 "다만 물소뿔과 [[상아]], 향약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물소]]와 [[코끼리]]를 어떻게 잡느냐고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코끼리는 미끼를 이용하여 유인한 다음 동아줄로 만든 올가미로 옭아맵니다. [[코뿔소]]는 사람이 큰 나무 위로 올라가서 활과 화살을 들고 있다가 다가오면 쏘아 죽입니다. 작은 코뿔소는 활과 화살을 쏘지 않고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 > [[송사]] 외국 열전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k_0020_0490_0050_0090#self|번역출처]] [[중국]]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의 직접적인 교류의 역사는 [[명나라]] 왕조의 [[정화(명나라)|정화]](鄭和)의 함대가 지금의 [[소말리아]], [[케냐]]의 해안까지 도달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이러한 교류는 정기적인 수준으로 정착되지 않았고. [[정화]]의 함대에 대한 기록이 개략적으로 남아 있어 어딜 갔는 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후로도 아프리카와 중국간의 교류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기가 되어 중국계 쿨리들이 모리셔스와 남아공 등지로 이주하기 이전까지는 주로 도자기, 비단같은 물품들이 아랍인, 페르시아인, 포르투갈인 상인들을 통해 유통되었고, 중국과 아프리카간의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다. || [[파일:attachment/uploadfile/220px-ShenDuGiraffePainting.jpg]] || || 1415년 [[소말리아]]에서 [[명나라]]로 운송된 [[기린]] || 전설 상의 동물인 [[기린(상상의 동물)|기린]]의 이름이 [[기린|이 아프리카 동물]]에게 붙여진 것도 이 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